"3년 차 개척교회를 떠나 통합 교단에서 가장 큰, 37년 차 대형 교회 담임목사직을 감당하게 되는 이 큰 십자가를 왜 아버지 목사는 아들 목사에게 짊어지게 한 것일까? (중략) 그 큰 십자가를 짊어지고 싶은 목회자가 대한민국에 단 한 명도 없었을까? 그래서 아버지는 그 고된 십자가를 아들에게 부탁한 것일까?" (프롤로그 '그날, 그곳에서', 15쪽)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돈·권력·세습 - 명성교회 사유화에 맞선 항거와 참회의 기록>(대한기독교서회)은 명성교회 세습에 관한 역사적 자료를 집대성한 백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신정호 총회장) 소속 목회자들이 만든 교회갱신과회복을위한신앙고백모임(신앙고백모임)을 비롯한 교계 단체 17곳이 백서편찬위원회를 꾸리고, 2013년 김하나 목사의 새노래명성교회 부임 이후 8년간 진행해 온 세습 투쟁기와 자료를 1055쪽에 걸쳐 정리했다. 4월 15일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 출간된다.

<돈·권력·세습 - 명성교회 사유화에 맞선 항거와 참회의 기록> / 백서편찬위원회 엮음 /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 1056쪽 / 5만 원. 뉴스앤조이 나수진
<돈·권력·세습 - 명성교회 사유화에 맞선 항거와 참회의 기록> / 백서편찬위원회 엮음 /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 1056쪽 / 5만 원. 뉴스앤조이 나수진

백서편찬위는 책 제목인 돈, 권력, 세습이 한국교회 문제의 핵심 키워드라고 봤다. "성장제일주의에 집착하는 교회는 수십 년 동안 그 교회를 양적으로 성장시켜 온 담임목사의 능력에 의존해서 성장 지속을 기대"했고, 담임목사는 "자신이 일궈 놓은 교회 성장에 힘입어 절대 권력을 쥐"었다. 그리고 "은퇴 이후에도 그러한 권력을 보장받기 위해 목회지 대물림, 곧 교회 세습"을 했다. 교회 세습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사유화함으로써 공교회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다.

명성교회는 한국교회 세습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2013년 '지교회 세습'으로 새노래명성교회에 부임한 김하나 목사는 2017년 11월 명성교회 위임목사로 부임했다. 명성교회가 속한 서울동남노회는 2017년 노회장 불법 선거 및 위임목사 청빙 결의안 졸속 통과, 2018년 세습 반대 노회원 면직·출교 등으로 파행했다. 2019년 8월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이 김하나 목사 위임목사 청빙 무효 판결을 내리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한 달 후 열린 105회 총회에서 김하나 목사의 위임을 허용하는 수습안이 결의됐다.

<돈·권력·세습>은 기본적으로 '명성교회 세습 반대 투쟁기'이지만, 단순히 비판에만 그치지 않는다. 백서에는 △명성교회 불법·편법 세습 과정 △노회·총회의 대응 △각계각층의 반대 운동이 담겨 있다. 명성교회는 한국교회 세습 반대 운동에 불을 지폈다. 목회자뿐 아니라 일반 교인들이 교회의 의미를 되묻고, 전통과 권위에 억압받던 목소리를 터뜨리는 계기가 됐다. 백서는 세습 반대를 외쳤던 일반 신도, 목회자, 신학생, 기독 단체 10곳의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며 이들의 성과를 기록한다.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문제와 개혁 과제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백서편찬위는 교회 개혁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답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름 받은 교회답게 변화되는 것이 교회의 변함없는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 질서의 확립 △총대 구성 성비 변화 △총회 의사결정 구조 변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뉴스 빅데이터 시스템인 빅카인즈·넷마이너를 활용해 명성교회 세습에 대한 일반·기독교 언론의 외면·옹호·비판 양태도 보여 준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 언론 보도 내용을 대상으로 매체들이 무엇에 주목했는지, 보도가 어떤 주기로 증가했는지 등을 분석한다.

신앙고백모임은 백서를 발간하며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는 참회록"이자 "거룩한 공교회로 회복하도록 인도하는 나침반"이라고 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책이지만, 교회 개혁 과제를 점검하고 수행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한국교회사 명성교회 파트 교과서' 역할을 할 것이다. 다양한 자료 및 연표,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토대로 명성교회 세습을 둘러싼 일련의 흐름을 한번에 정리하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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